나는 어떻게 동화작가가 됐는가?

 

 

나는 그동안 내가 동화를 쓰게 된 것은 운명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제는 나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체화된 동화가 어떻게 내게 처음 깃들게 됐나 돌이켜봐야겠습니다.

 

한글을 깨우치기 전인 유년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내게는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던 할머니가 계셨지요. 문맹을 평생 가슴의 한으로 품고 사셨던 할머니는 농사철이 끝나고 겨울이 되면 밤마다 나를 업고 마을의 한 할머니댁으로 마실을 가곤 했습니다. 한글을 읽을 줄 알았던 그 할머니는 마을의 부녀자들에게 이야기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일종의 강화사였던 셈이죠.

 

『심청전』『흥부전』『운영낭자전』『사씨남정기』등과 같이 긴 이야기들은 며칠을 두고 연속극처럼 이어졌습니다. 가장 어린 청중이었지만 어른들 못지않게 몰입해 듣던 나는 늘 뒷이야기에 목마른 채 돌아와야 했습니다. 집에 와서 누우면 다 듣지 못한 뒷이야기들이 천장에 그림처럼 펼쳐지곤 했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글을 깨우친 다음 자연스레 독서를 즐기게 만들었습니다. 방정환의 번안동화들이나 조흔파의『얄개전』,그리고 『하이디』,『소공녀』,『작은 아씨들』같은 세계명작동화 등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은 물론, 이광수의 소설들과 김래성의 『마인』, 미우라 아야코의『빙점』같은 대중소설까지 가리지 않고 읽었습니다.

 

많은 책들 중 단연 나를 사로잡은 것은 세계명작동화였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독서처럼 학교 공부의 일환이 아니라 오로지 즐기기 위한 행위였던 그 독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로 나를 이끌었습니다. 이야기는 내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나갔습니다. 나는 나날이 무성해지는 이야기를 남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 아동청소년문학의 위상은 미미하기만 했고, 나 또한 동화작가가 따로 있다는 사실도 모를 만큼 무지한 가운데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소설 습작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보던 <소년중앙>에서 우연히 ‘중앙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장르는 소년소설이었고, 분량은 105매 내외였습니다.

 

호기심에 그전의 당선작들을 찾아 읽어 본 나는 그동안 내가 썼던 소설들이 다름 아닌 ‘소년소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써 놓았던 소설을 고칠 것도 없이 응모하였고, 그 작품은 뜻밖에도 최종심에 올랐습니다. 나는 비로소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야기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들의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내가 동화를 읽으며 그랬던 것처럼 나는 아이들의 영혼을 사로잡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지요.

 

나는 내 안에 있는 이야기의 광맥을 캐내기 시작했습니다. 글 쓰는 동안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그 과정은 창작의 고통마저도 달콤하게 여겨질 만큼 매혹적이었습니다. 행복한 글쓰기는 행운까지 불러와 다음 해인 1984년 가을 ‘새벗 문학상’에 단편동화 「영구랑 흑구랑」이, 같은 해 겨울 재도전한 ‘소년중앙문학상’에 중편 소년소설「봉삼아저씨」가 연달아 뽑히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동화창작교실 』중에서

<-       ->